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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에서 의미하는 폭행과 협박의 정도

불편한 형사소송 이야기

by LEGALMIND-LAW 2020. 5. 19.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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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 제297조가 말하는 강간죄는 폭행이나 협박으로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성교가 가해진 때를 말합니다. 과거 강간죄의 객체는 '부녀'로 국한되었으나, 현재는 '사람'으로 개정되었습니다. 이 개정으로 인해 강간죄의 보호법익이 '여성의 정조 혹은 여성의 순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게 되었고, 독립된 개인으로서 누구든지 행사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동성 간의 강간도 '유사강간죄'로 처벌됩니다.

흔히 강간죄가 말하는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를 '최협의'의 폭행·협박이라고 말합니다. 폭행 또는 협박을 해석하는 학설은 그 인정 범위에 따라 최광의, 광의, 협의, 최협의로 나뉘고 있는데 이 중 '최협의'가 강간죄를 해석하는 법 시각입니다. 강간죄는 3년 이상에서 50년 이하의 징역으로 중한 처벌이 뒤따르기에, 광의의 의미보다는 최협의설에 따른 객관적 판단을 적용합니다. 이를테면, 피해자의 반항이나 곤란이 현저히 곤란 정도일 때 강간죄를 인정한다는 것이죠.

최근, 이 '최협의설'에 대해 사회 각계각층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폭행이나 협박에 대한 판단 기준을 피해자의 ‘신체적 취약성’에만 적용한다면, 위력의 존재나 권력관계의 불균형 등 특이 상황에서 발생하는 강간 범죄 사건이 처벌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우려에 섭니다.

서로 잘 아는 사이라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강간 사건에 있어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85%로 집계된다며, 현실적으로 낯선 사람과 발생하는 범죄는 많은 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에 따른 간단한 사례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A와 B는 서로 호감은 있으나 아직 관계는 맺지 않은, 이른바 '썸'의 상태입니다. 몇 차례 함께 술을 마시며 자연스럽게 스킨십에 이르렀고, 이 과정에서 남성 B는 관계에 어느 정도 동의한 사이라고 생각하고 여성 A를 자택으로 데려갑니다. 관계 도중 A 씨의 명시적 거절 의사는 없었습니다. 이튿날 이어진 A 씨의 강간죄 형사고소, 이 같은 경우 혐의는 성립하는 걸까요?


이러한 연인 관계라면 '합의'나 '강제', '협박'의 정도가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만일 폭행이나 협박의 정도를 널리 인정한다면(광의) 강간죄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우려가 발생하고, 반대로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만을 인정할 경우(최협의) 다른 특수 상황은 모조리 배제한 채 피해자의 보호법익을 어기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여성 A는 명시적인 거절과 반항의 의사가 없었기에 남성 B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다고 할 수 없어 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번엔 예시를 비틀어, 여성 A 씨의 적극적인 거절 의사가 있었고 남성이 이를 무시했거나 회유했다고 가정해봅니다.

최근 법원은, 여러 성범죄에 대해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 여부'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시각을 도출한 바 있고 이에 따라 강간죄에 적용되는 최협의설을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위와 같은 친숙한 사이라도 상황에 따라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인정하였고, 심지어 관계에 있어 피의자가 피해자의 팔목을 잠시 누르고 뗀 정도라도 그 죄를 인정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최협의설 완화되고 있어

현재는 강간죄 성립요건에 대해 부부간에라도 그 혐의를 인정하는 단계까지 다다랐습니다. 당사자가 부부 사이일지언정, 항거불능의 상태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다면 그 관계에 이른 행위 자체가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라고 해석된다는 것이죠. 그러니 위와 같은 연인 사이라면 그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더욱 첨예해질 것입니다.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폭행·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1. 2. 23. 선고 2000도5395 판결, 대법원 2001. 10. 30. 선고 2001도4462 판결 등 참조). 또한 강간죄에서의 폭행·협박과 간음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나, 폭행·협박이 반드시 간음행위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대법원 2017. 10. 12 선고, 2016도16948, 2016전도156, 판결)

실제 강간 혐의의 수많은 판례를 살펴보자면, '직접적인 폭행·협박의 존재와 저항 여부를 엄격하게 따지는 판결'과 '물리적·직접적 저항이 어려운 전후 맥락을 함께 보는 판결'이 혼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가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고하게 강간죄 혐의를 받게 된 경우 서둘러 합의로써 종결하고자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합의 후 신고자가 제출하는 처벌불원의사는 결정적인 양형의 요소이긴 합니다. 그러나 피의자 자신도 경황이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합의를 시도하는 일은, 수사기관으로 하여금 혐의를 인정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반면 합의에 응하지 않고 직접 무혐의를 입증하고자 한 대도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무혐의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다수의 강간 범죄는 목격자가 없고 증거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때문에, 아무리 묵시적 합의가 있었던 관계라 할지라도 이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결국 피해자의 진술이 상당히 중요해집니다.

따라서 처음 신고를 받은 즉시 변호인과 충분한 상담을 통해 상황에 맞는 대응전략을 꾸려야 합니다. 모든 범죄가 그러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성범죄는 초기 대처가 매우 중요합니다. 한번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는 나중에 내용을 번복하기 힘들뿐더러, 초기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재판에서도 매우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강간죄는 벌금형이 없고, 징역형으로만 처분을 내리고 있습니다. 최근 처벌 경향이 엄중한 만큼 섣부른 행동은 금물이며, 형사전문변호사와의 상담을 통해 각 상황에 맞는 적절한 대처를 이어가야 합니다.

법무법인 오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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