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재판장님께
미성년자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텔레그램 ‘n 번방’ 공범자들이 매일매일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민적 분노가 극도로 높은 사안인데 정작 사건 가담자들이 줄줄이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다고 하니, 일각에서는 '그냥 감형 받으려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합니다. 형사소송에 있어 '반성문'이 큰 양형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공범들도, 그리고 일반인들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요.
반성문 제출은 재판부의 양형 과정에서 일부 참고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피의자들의 반성문과 개인적 사정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탄원서, 처벌불원의사 등 다양한 요소를 양형 근거로 참고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양측의 입장에서 반성문과 탄원서에 대해 자세히 짚어봅니다.
반성문으로 재판 뒤집히기도 하나요"
먼저 반성문은 재판 시 참고할 만한 부차적인 자료에 해당할 뿐, '증거의 효력'은 발휘하지 못합니다. 어떤 형사사건이든 객관적인 증거자료와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형을 선고하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법조계는 "재판과 관련한 모든 서류를 다 읽어보긴 하나, 유무죄나 형량에 있어 큰 영향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다만, "참작할 만한 요소가 있다면 충분히 반영한다"라고 덧붙였는데요.
탄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운 지인이 형사사건에 휘말렸다면, 범죄의 경중을 떠나 흔쾌히 탄원서를 써주기도 하지요. 그런 탓에, 당연히 가해자를 옹호하는 내용만 담기게 될 것이고요. 법원은 사안이 경미하고 초범일 때라면 지인의 탄원서는 고려해보겠으나, 살인 등 죄질이 중한 사건일 땐 참고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개별적인 사건의 성격이 모두 달라 공통적인 결론을 내기 어렵지만, 실제 반성문으로써 감형 받은 사례와 감형 받지 못하는 사례는 혼재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칙적으로 양형의 요소로 꼽히고 있는 만큼, 준비할 수만 있다면 최대한 시도해봐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다들 어떻게 썼을까
잘 쓴 반성문·탄원서의 사례를 알아보고, 변호사의 입장에서 부가적인 설명을 해봅니다.
1. 대필의 효과... 글쎄?
반성문·탄원서는 특별한 양식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유료 사이트에서 본인의 죄목에 맞는 반성문 양식을 구매해 사용하기도 하고, 심지어 대필 업체에 맡기는 경우도 빈번한데요. 법조계는 '반성문을 하도 많이 받아봐서, 틀에 박힌 반성문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때문에 죄목만 같을 뿐 개인 사정만 다른 반성문은 진지한 반성문이라 하기 힘듭니다.
형식적인 탄원서 제출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재판부는, 탄원서가 타인의 청탁이나 강압에 의해 작성되었는지, 혹은 기술된 내용이 작성자 본인의 실제 경험에 기반된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판단합니다. 만일 인터넷에서 떠도는 내용을 불필요하고 과도하게 인용한다면, 이는 사회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어 참작의 요소로 인정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타인의 글을 무작정 베끼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경험한 사실을 담는 것이 좋습니다.
2. 진정성 있나
잘 짜인 형식, 어려운 법률용어에 연연하기보다는 반성문이라는 취지에 맞게 실제 반성하는 내용을 주로 담아야 합니다. 현재 상황으로 인해 무엇을 뉘우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최대한 본인의 진심을 잘 녹여내야 한다는 거죠. 추가적으로, 본인이 피해자보다 더 고통스럽다거나 피해자 탓을 하는 내용을 담는다면 이는 당연히 좋은 반성문이라 할 수 없습니다.
■ 잘 쓴 반성문 사례
작성자 : 1심에서 실형 선고받은 특수절도 7범의 피고인
주제 : 용서
내용 :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용서를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어렸을 적 뭔가를 잘못해서 용서를 빌면 아버지는 욕하며 매질만 했고, 학교에서도 선생님은 항상 꾸짖기만 했습니다....[후략]...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깊이 고찰한 위 반성문은, 실제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여 집행유예의 선고를 끌어냈다고 전해집니다. 재판부도 《피고인의 죄가 중하나, 이번에 한해 특별히 '용서'한다》라는 판결을 내며, 피고인의 반성문에 화답했습니다.
■ 잘 쓴 탄원서 사례
피고인 : 졸음운전 사고로 4명의 사상자를 낸 트럭 기사 △모 씨
작성자 : 피고인의 동료들
내용 : 피고인의 졸음운전은 고의가 아닙니다
-피고인의 생활
-피고인의 평소 업무 강도
-기타 고의가 아닌 사유 등
3. 구체적인 사연
불우한 가정환경과 가족·지인들의 정신적 고통 등은 반성문의 '단골'소재입니다. 그러니 추상적인 내용을 담는 것으로 진부함을 고수하기보다는, 최대한 구체적으로 서술해 차별성을 둘 것을 권유 드립니다. "아버지가 아프시고, 어머니가 걱정하시고" 등의 문장보다 "아버지가 어떤 경위에 의해 병환에 계신지, 어머니의 직업은 이랬는데 지금은 어떠신지" 등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또, 단순히 '반성합니다' 만 반복해서는 진심이 전달되기 힘듭니다. 피고인이 처한 정황과 사건에 이르게 된 경위, 반성의 여지 등이 글로써 구체적으로 서술된다면 재판부 또한 피고인의 실제 상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 잘 쓴 탄원서 사례
피고인 : 도박 혐의로 1심에서 실형 선고
작성자 : 피고인의 아내
작성 형식 : 전지 용지 (A0 사이즈)에 자필
내용 :
-남편을 만나게 된 사연
-남편이 도박에 빠진 경위
-도박을 그만두지 못한 배경 기타 등등
단순히 선처를 바라는데 그치지 않고 한 인격체에 대한 구체적 사연이 들어있는 것이 눈에 띕니다. 위 재판에 참여한 판사들은 큰 책상에 전지를 펼쳐놓고 그 내용을 꼼꼼히 읽어봤다고 회고하는데요. 결과적으로 '이런 아내가 옆에 있다면 한 번쯤 기회를 줘볼 만하다'라는 판단이 작용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됩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전지 사이즈의 용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A4용지 1~2장의 분량이라도 최대한 가독성을 높여,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합니다.
4. 행동으로 증명해야
반성문만 제출하고 정작 피해자와 진심 어린 합의를 하지 않는 경우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도 있습니다. 말로는 반성한다면서 실제 법정에서 그렇지 못한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감형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피해자와 합의를 시도함과 동시에 공탁금의 제도도 빌려보고, 혹 약물중독의 혐의를 받은 경우라면 직접 재활센터에 등록하는 등의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때 오히려 피해자가 나서서 '가해자를 용서해 달라'라는 탄원서를 쓴다면 어떨까요. 대개 피해자들과 그 지인들은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달라'라고 탄원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진심 어린 반성으로써 피해자와 합의했다면 탄원서의 내용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겠죠.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도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 등에 대해 피해자가 탄원서로 호소한다면 매우 유리한 양형요소로 작용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맺으며
잘 쓴 반성문·탄원서는 양형 요소의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반성문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그에 따른 적절한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는 말이죠. 만일 이 과정에 있어 피해자와의 합의가 어렵다면, 형사전문변호사의 조력을 빌려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쓰인 반성문을 함께 검토한 후 앞으로의 대처방안도 꼼꼼히 준비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법무법인 오른이었습니다.
약식명령 정식재판 후 순서 (0) | 2020.05.27 |
---|---|
사이버명예훼손 해당 여부 (0) | 2020.05.19 |
특수절도와 절도, 가장 중요한 차이점 (0) | 2020.05.19 |
강간죄에서 의미하는 폭행과 협박의 정도 (0) | 2020.05.19 |
성적목적다중이용장소침입 가중처벌요소 (0) | 2020.05.1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