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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일관된 진술에 대한 올바른 판단

불편한 형사소송 이야기

by LEGALMIND-LAW 2020. 4. 3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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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건의 가장 큰 특징은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범행 장소의 CCTV 화면이나 문자 및 통화 내역, 제3의 목격자 진술 등이 증거로 제출되기는 하나 워낙 내밀하게 발생하는 사건인 탓에 이마저의 증거도 없을 때가 많고, 피해자가 신고를 망설이기라도 한다면 신고 시점에서는 가해자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있을 때가 많습니다. 결국 남은 것은 피해자의 진술입니다.

원래 형사소송법상, 형사범죄 피해자의 공판절차에서의 증언은 원칙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피해자의 증언만으로도 유죄 판결이 나는 형사사건이 있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피해자의 진술이 충분히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여기에 약간의 물적 증거까지 결합된다면, 이때의 피해자 진술은 피고인에 대한 유죄의 심증을 충분히 갖게 할 정도의 효력이 있습니다. 피해자 증언밖에 남지 않은 성범죄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범죄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은 지속적으로 논란 대상이고, 최근 격화된 대한민국의 젠더 분쟁의 흐름은 '일관된 진술'에 대한 상당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피해자 증언의 효력

형사 사건에서 유죄 입증책임은 검찰에게 있습니다. 사건 피고인에게 범죄 사실이 있었다는 입증책임을 부담하기 위해선, 검사 측에서 재판부로 하여금 의심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백한 증거를 통해 주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피고인이 본인의 유·무죄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보다는 사건 발생 당시 범죄행위가 아닌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거나 혹은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이른바 '알리바이'를 증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여타 다른 증거가 없고 피해자의 증언만 남은 상태라고 해봅시다. 검사 측은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해야 하며, 당연히 그 진술에 대한 신빙성도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재판부조차도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을 먼저 판단할 것이고요.

오로지 피해자의 진술에만 터잡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진술의 진실성과 정확성에 거의 의심을 품을 만한 여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증명력이 요구되고, 이러한 증명력을 갖추었는지를 판단할 때는 피해자가 한 진술 자체의 합리성, 일관성, 객관적 상당성은 물론이고 피해자의 성품 등 인격적 요소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 증명력 : 증거능력을 가지는 증거가 형사 피고인의 유죄를 어느 정도로 증명할 수 있는가

(2011도16413).

피해자 증언의 '위력'

최근 대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새로 제시했습니다.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양성평등기본법 제5조 제1항 참조).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인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 또는 그로 인한 정신적 피해 등에 노출되는 이른바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여야 한다. 피해자는 이러한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고, 피해 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다가 다른 피해자 등 제3자가 문제를 제기하거나 신고를 권유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피해 사실을 신고한 후에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그에 관한 진술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대법원 2018. 4. 12. 선고 2017두74702 판결

피해자의 진술이 일부 모순되고 일관되지 않더라도 당시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해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개념이고, 즉 '피해자 진술을 쉽게 배척하지 말라'라는 뜻입니다. 해당 단어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실형 선고 즈음 명문으로 남게 되었고, '피해자의 진술=유죄추정의 원칙'이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도 더욱 커졌습니다. "피해가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에서 진술만 일관되게 하면, 합의에 의한 관계이고 또 다른 증거가 있더라도 성인지 감수성에 의해 피해자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인정되고, 급기야 모두 다 유죄 판결이 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죠.

피해자 증언밖에 안 남은 상황,

핵심은...

'성인지 감수성' 판결이 있는 현재, '일관된 피해자의 진술'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일단 성범죄 사건의 판결 결과를 좌우할 정도로 상당히 중요해진 것은 맞습니다. 진술의 신빙성을 위해 '진술분석 전문가'라는 새로운 직업도 대두되었으니 말입니다.

이 판결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큰 디딤돌이 되어주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명백한 피해를 당했음에도 이를 알리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적극적인 구제의 길이 되어준 것이죠.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실체적인 관계를 정확히 가려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 법원의 책무라는 점 아닐까요. 다시 말해, 피해자 진술 신빙성에 있어 '성인지 감수성'을 가지고 충분히 숙고하되, '합리적 의심 원칙'이라는 형사법 대원칙을 생략하자는 것은 아니란 겁니다. 구체적 상황에 따라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 다름을 용인하되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합리적인 선이 있어야겠습니다.

'곰탕집 사건'을 두고 남녀가 각각 둘로 나뉘어 규탄 집회를 벌일 정도로 극한의 대립을 벌였다는 사실은, 아직은 이 의견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처럼 보입니다. 성범죄의 특성인 구조적인 한계가 극복될 수 없다면, 고소인과 피고소인 둘 중 어떠한 입장에서라도 사실관계에 입각한 판단이 필요할 것입니다.

법무법인 오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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