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를 체포할 때 의무적으로 묵비권을 고지하는 장면을 많이 봐오셨을겁니다.
멋드러지게 범인을 잡고, 무심한 듯 뱉어내는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 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라는 대사는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에서 범인의 체포 장면을 다룰 때 항상 나오는 대사인데요. 이 말이 바로 ‘미란다 원칙’입니다.
하지만 위 대사는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란다 원칙(Miranda warning/Miranda rights)은 1966년 미국 연방대밥원의 판결로 확립된 원칙으로 여기서 미란다는 음료수 이름이 아니고 (?) 바로 범인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는데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시 경찰이 1963년 멕시코 계 미국인 에르네스토 미란다(Ernesto Miranda)를 납치·강간 혐의로 체포했는데, 미란다는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피해 신고 후에 미란다를 범인으로 지목하여 체포됐던 것이죠.
영문을 모른채 경찰서로 연행된 미란다는 경찰관들의 강요나 가혹행위는 없었으나 본인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미란다는 재판을 받으면서 법정에서 자신이 수사기관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하고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자백이야 말로 수사기관과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리기에는 가장 좋은 증거이기에 미란다의 수사기관에서의 자백은 법정에서 유력한 증거였고 진술 번복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애리조나 주법원은 미란다에게 중형을 선고하였습니다. 미란다는 ‘주 대법원’에 상고를 했지만 역시 무죄가 인정되지 않았고, ‘연방대법원’까지 상고를 하였습니다.
수사기관에서 변호나 참여를 하지 못했던 미란다의 변호인은 미란다의 자백이 부적법하였고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때문에 미란다가 미국 수정헌법 제5조에 보장된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와 제6조에 보장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점을 열변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66년, 5대 4의 표결로 미란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무죄 선고의 이유는 그가 체포당시 진술거부권, 수사기관에서 변호인선임권 등의 권리를 고지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판결은 당시 범죄피해자나 범죄예방 보다는 범죄자의 권리를 더 존중하고 있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으나 시간이 지나 이 ‘미란다 판결’은 ‘미란다 원칙’으로 확립되어, 수사관들이 피의자를 체포할 경우 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미국 드라마에서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 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라는 대사가 필수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위 대사는 우리나라의 법과는 맞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12조 제2항에서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그리고 제5항에서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
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피의자의 권리를 헌법에 직접 규정함으로써, 해석으로 인정되는 미국보다 확실한 권리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죠.
또한 형사소송법 제200조의5에서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우에는 피의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규정에 따르면, 피의사실의 요지, 체포 이유, 변호인 선임권 고지, 변명할 기회 이렇게 네가지를 고지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즉 미국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묵비권(진술거부권)’은 고지사항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당신을 살인죄(피의사실의 요지) 현행범(체포이유)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 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가 있습니다." 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고지되고 있으며, 경찰관이 친절하게 피의자에게 묵비권을 알려주는 우리나라 드라마는 우리 법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묵비권(진술거부권)을 우리 형사소송법 제244조의 3에 규정에 따라 피의자가 경찰이나 검찰에서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을 때, 수사기관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알려줍니다.
귀하는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귀하가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합니다.
귀하가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을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귀하가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위의 네가지 내용은 피의자 신문조서의 두 번째 페이지에 ‘부동문자’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피의자는 아래와 같이 답하게 됩니다. 물론 아래의 질문 부분은 이미 인쇄가 되어 있고, 수사관이 이 질문사항들을 다시 한번 피의자에게 물어보고, 피의자는 자필로 ‘답’ 란에 권리를 고지 받았는지, 진술거부권 행사여부, 변호인의 조력권 행사여부를 기재합니다.
문 : 피의자는 위와 같은 권리들이 있음을 고지 받았는가요.
답 : 예.
문 : 피의자는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요.
답 : 아니오
문 : 피의자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행사할 것인가요
답 : 박석주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하여 조사를 받겠습니다. / 또는 아니오.
이 미란다 원칙은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에 규정하는 등 피의자의 강력한 권리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피의자 신문조서에 부동문자로 기재된 조항들은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이후에 바뀐 것들입니다. 피의자의 권리 보장은 우리 형사소송법 체계에서는 이미 형식적으로는 확립되어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형사소송법의 관심사가 피고인·피의자 보다는 오히려 ‘피해자’의 권리 보장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특히 성범죄 피해자는 ‘국선변호사’가 선임할 수 있는 등, 피의자의 권리 보장에서 피해자의 권리 보장으로 중심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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