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법은 기본적으로 행위 책임, 그러니까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 일을 하면 형벌로써 책임을 지게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범죄에 해당하는 일을 했는데 특정사건 가진 특성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대여섯살짜리 꼬마가 아파트 옥상에서 화분을 밀어 떨어뜨려 밑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다쳤다고 한다면, 일반인이라면 상해든지 과실치상죄든지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5살짜리 어린 아이가 저지른 일을 구속하고 처벌할 수는 없겠죠. 교육을 잘못한 부모에게 민사적으로 손해배상하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심신미약은, 심신상실이라는 것과 같이 문제가 되는데 심신에 장애가 있어서 사리분별이나 의사결정을 제대로 못하거나 그런 능력이 약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해주는 걸 말합니다. 사리 판단 능력이 아예 없다고 할 정도면 심신상실, 약하다고 하면 심신미약이 되는 건데요. 조현병, 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치매나 최면상태 등이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고, 음주, 약물중독, 충동 장애 등도 심신미약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습니다.
종전에는 심신상실에 해당하면 아예 처벌이 면제되고 심신미약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형을 반드시 깎아주도록 했는데, 현재는 심신상실 처벌면제는 그대로이지만, 반드시 형을 감형해주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2018년 12월에 법이 개정됐습니다.
심신미약에 해당한다는 점을 내세워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감경받는 일이 자꾸 알려지니까 제한을 할 필요가 있겠다라는 여론이 들끓었고, 개정안이 발표된 직접적인 계기는 강서구 PC방살인 사건의 김성수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우울증 치료 진단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또 심신미약 주장해서 감형받으려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면서입니다.
김성수 심신미약 감형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서명자 수가 사상 처음 100만명을 돌파해 119만명에 달했는데, 이는 역대 최대 기록이었죠. 여론이 거세다보니 결국 심신미약의 경우 반드시 형을 깎아주는게 아니라 깎아줄 수도 있고 안 깎아 줄 수도 있는 것으로, 형량감경을 '의무'에서 '임의'로 바꾼 형법 개정안. 이른바 '김성수법'이 2018년12월에 통과된 것입니다. 이 때문인지 김성수는 재판에서는 심신미약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먼저 밝히기도 했습니다.
기존에는 심신미약이면 형을 감경한다는 내용이 의무조항이었습니다. 하지만 2018년 12월 18일부터 심신미약자 감형 '의무'였던 현행법 조항이 심신미약자 감형 '임의적' 적용으로 개정되어 재판부의 재량과 판단의 폭을 넓힌 것입니다.
종전에는 심신미약이나 상실로 대부분 형을 감경받아 왔는데, 어떤 규정으로 술을 마신 자에게 형사책임이 감경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심신상실자에 대한 규정은 형법에 있습니다. 형법은 행위자에게 법률적 비난을 가하기 위한 전제로, 행위자에게 사물을 분별·판단하고 그에 따라 의사를 결정할 능력, 즉 책임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책임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하고(형법 제10조 제1항), 심신미약자나 농아자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형법 제10조 제2항, 제11조). (※ 농아자는 청각ㆍ언어 양기능의 결함을 가진 자입니다. 형법은 건전한 정신발육의 저지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한정책임능력자로 하여 형을 감경합니다.)
이상과 같이 형법에 심신상실자의 책임감면에 관한 근거가 있었습니다만, 그렇다면 실무적으로는 위와 같은 주장이 얼마나 의미있을까요.
실제 행위 당시 심신상실자라는 주장, 즉, 범행 당시 술을 마셔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의 진술은 매우 흔하게 제기되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인용되어 형의 감경으로 쉽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즉, 법원은 술로 인한 심신미약 적용에 인색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은, "형법상 심신상실자라고 하려면 그 범행당시에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의 시비선악을 변식할 능력이나 또 그 변식하는 바에 따라 행동할 능력이 없어 그 행위의 위법성을 의식하지 못하고 또는 이에 따라 행위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어야 하며 범행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범행당시 심신상실 상태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감정결과와 피고인이 그 범행의 일부 또는 전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 심신상실상태를 단정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대법원 1985.05.28. 선고 85도361 판결 참조).
물론, 범행당시 음주만취되어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한 사례도 있습니다(대구고등법원 1985. 4. 9. 선고 85노262 제1형사부판결). 그러나 주장의 빈도를 고려할 때 인용되는 사례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술을 마신 자가 저지르는 강력범죄, 음주운전 등이 문제되는 일이 끊임 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자에 대해 감면은 커녕 보다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몇몇 사례에서는 위 법에 따른 법적용이 와닿지 않는 사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부정례로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된 안인득을 들 수 있습니다. 안인득은 경남 진주의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주민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했는데요. 안인득은 재판에서 범행 당시 조현병 등으로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안인득에게 조현병이라는 정신장애가 있고, 그 때문에 피해망상, 관계망상, 불안정한 감정 등을 보이는 사실은 인정했습니다만 범행 경위나 수단, 방법 등을 살펴봤을 때 안인득이 범행 당시 조현병으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고는 보이지 않는다며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사형이라는 법정 최고형을 선고했습니다.
2017년 인천에서 8세 초등학생을 유인해 살해한 주범 김모양도 정신질환으로 치료받은 전력을 들어 심신미약을 주장했는데요. 법원은 심신미약을 받아들이진 않았지만 만 19세 미만의 소년범에 해당한다는 점 때문에 징역 20년이 확정됐습니다.
심신미약이 인정된 대표적인 사례로 조두순 사건이 예로 듭니다. 검찰은 2008년 당시 8세 아동을 잔혹하게 성폭행한 그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범행 당시 만취 상태, 즉 음주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이유로 법원이 징역 12년을 선고했고 그대로 확정이 됐습니다. 이 판결은 당시에도 국민의 분노를 이끌었고, 이후에는 더 이상 음주상태에서의 성범죄가 심신미약 감경을 받지 않도록 법률이 개정됐죠. 2013년 6월 개정된 성폭력처벌법 20조에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 범죄를 범한 때에는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 규정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했습니다.
안인득 사건의 경우 사람을 5명이나 살인한데다 철저한 계획에 의해 실행된 범죄로 1심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만 추후 정신질환 병력이 참작되어 무기 혹은 유기징역으로 감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법정에서도 횡설수설하며 난동을 부리는 등 반성의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의 변호인에게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욕설을 퍼부어 국선 변호사가 '나도 변호하기 싫다'라고 말다툼을 하는 등의 촌극까지 벌어졌었죠.
사건 발생 전에 안인득의 형이 동생을 입원시키기 위해 병원, 동사무소, 검찰, 법률공단 등에 찾아가 강제입원의 필요성을 호소했지만 어느 관공서에서도 도와주지 않은 점 ▲아파트 주민들의 수차례에 걸친 경찰의 신고 등이 있었지만 공적 기관이 적절하게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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