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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에서 심신미약/심신상실은 왜 감형을 받는가?

오른이 말하는 진실

by LEGALMIND-LAW 2020. 3. 1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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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강력사건이 벌어진 뒤 높은 확률로 이슈가 되는 부분이 바로 심신미약에 관한 것입니다. 조두순과 작년 벌어진 PC방 살인사건까지, 가해자들은 정신질환이나 술에 취했다는 등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자신의 심신미약을 주장했었죠.

 

대부분의 국민들은 피해자에게 감정이입합니다. 본인이나 내 가족이 그런 비참한 일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크게 분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죠.

 

PC방 살인사건의 경우 피의자의 부모가 심신미약을 인정받기 위해 경찰에 우울증 진단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로인해 예전 조두순 사건때와 마찬가지로 심신미약자 감형 폐지를 목놓아 외치는 여론이 들끓었었지만 결국 폐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대한민국 형법은 국민들의 90%가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함에도 소극적으로 나오는걸까요?

 

오늘은 왜 형법이 심신미약 감형폐지를 실행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제10조(심신장애인)

①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 할 수 있다.

③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 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우선 우리나라 형법 제10조 1항과 2항을 살펴보시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자의 행위는 처벌하지 않고, 심신미약 정도가 약한 자는 처벌수준을 감경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1항은 심신상실, 2항은 심신미약 상태를 말하는 것이죠.

 

간단하게 이야기 하자면 판단력과 결정 능력이 완전히 없거나 흐려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심신상실이나 미약 상태였는지의 여부는 여러 정황과 증언, 의학적 감정과 소견을 통해 판사가 결정합니다.  

 

심신장애로 인한 책임능력을 규정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 생물 학적 방법, ② 심리학적 방법, ③ 혼합적 방법입니다. ①은 행위자의 비정상적인 생물학적 상태를 기술하고 그러한 상태가 있으면 바로 책임능력을 부인하는 방법이고 프랑스형법(1810년) 제64조,2) 미국의 Durham Rule, 영국의 살인죄법 (1957년) 제2조(감약책임능력), 독일형법 제19조, 우리나라형법 제9조, 제11조 등 이 채택하는 방법이죠. ② 심리학적 방법은 책임이란 달리 행위할 수 있었음에도 범행을 한 데 대한 비난이므로 행위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으면 책임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1869년 7월 북독일연방형법 제1차초안 제46조. 실제  입법례에서 순수하게 심리적 방법을 채용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③ 혼합적 방법은 앞의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하여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행위자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생물학적 요소로 규정하고, 이 요소가 행위자의 변별능력(지적 요소)과 의사결정능력 (의적 요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심리학적 요소로서 검토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미국 모범형법전, 독일형법 등 많은 나라에서 채용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 방법을 사용중일까요? 대한민국 형법학자들은 대체로 독일형법제20조의 분류를 기초로 하여 심신장애의 개념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무상 정신감정에서는 정신 의학자들이 공식적으로 WHO의 국제질병분류(ICD-10)를 채용하고, 현실적으로는 주로 미국정신의학회의 진단 및 통계편람(DSM-IV)의 진단분류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심신미약 감형 폐지에 소극적일까?

 

우선 형법상 책임주의에 대해 설명이 우선되어야할 것 같네요. 일반적으로 형사상 책임은 행위자가 합법을 결의하고 행동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결의하고 행동하였다고 하는 의사형성에 대한 윤리적 비난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형법학계의 통설적 견해인 규범적 책임개념에 의하면 책임은 '비난가능성'입니다. 여기서 비난이란 행위자가 비난의 대상인 불법행위를 하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한 비난을 의미하며, 이와 같은 의미의 책임비난을 가할 수 있는지 여부는 행위자가 스스로 행한 불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규범준수적인 행위로 나올 수 있었는가가 관건이 됩니다. 이에 따라 그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행위자가 법과 불법을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인 판단력이 존재하여야 하고 그러한 판단에 기초한다면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규범준수적인 행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의사능력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판단력과 의사능력이 바로 형법이론상 책임능력이라고 하는 것이죠.이와 같이 애초에 책임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에 대해서는 형벌을 가할 수 없다는 원칙이 바로 '책임주의 원칙'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형법의 근간에는 책임주의에 뿌리가 있기에, 이 근간을 부정하는 심신미약 감형 폐지에 대해 소극적으로 신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말 심신미약은 폐지해야할까?

 

수많은 심신미약 사례들을 살펴보면 유독 대중의 심리에서 벗어난 판결들이 많습니다. 가령 계속해서 말씀드리고 있는 조두순 사건처럼 일반인의 감정에서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 종종 나온것이죠. 이러한 판결들에 반성할 점들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의 경우 정신건강 전문가와 법원의 판결이 93%정도 일치하는 반면 대한민국은 절반 정도에 그치는 상황입니다. 정신장애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은 실정에서 법원은 심신미약에 대해 아직까지 판사 재량에 큰 부분을 맡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범행 후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법원이 이를 인정해주는 비율은 19% 정도로 5명 중 1명 꼴입니다.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핑계거리로 심신미약을 주장한다고 볼 수도 있고, 또 달리 생각하면 법원이 심신미약을 인정하는데 매우 엄격한 기준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 조두순 처럼 매우 오래전 일반인들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심신미약 감형을 인정했던 경우도 있지만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피해망상, 미분화형 조현병 진단 확정으로 입퇴원 반복)처럼 비교적 최근 일어난 정신질환자의 범행에는 징역 30년을 선고하며 사실상 심신미약 감형이 일반 살인사건과 비교하여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2살 아이를 3층에서 내던져 숨지게 한 발달장애인(인지와 정신기능의 장애 및 자폐증적 경향, 발달장애 1급)에 대해서는 완전한 심신상실자로 보아 책임능력이 없으므로 책임이 조각돼 무죄를 선고한 바도 있습니다. 대법원까지 간 끝에 발달장애인 이군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치료감호를 받도록 원심을 확정했죠.

 

최근 사례들을 살펴보면, 이처럼 정신질환에 대해 심신미약이 인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술에 취했다. 만취상태였다' 정도로는 심신미약으로 감형받는 경우가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심신미약에 관하여 찬반의견을 나눌 때, 이제는 '스스로' 만취하여 저지른 범행에는 법원이 심신미약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제로 해야합니다.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도 이에대한 조항이 추가되었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 20조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범죄(제2조제1항제1호의 죄는 제외한다)를 범한 때에는 「형법」 제10조제1항ㆍ제2항 및 제11조를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

 

검찰도 지난 1월 1일 음주 상태에서의 살인죄는 심신미약에 따른 감경 구형을 하지 않기로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살인범죄 처리기준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맺으며

 

"우울증은 그에게 칼을 쥐어주지 않았다. ...(중략)...오히려 이 사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심신미약자의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것이라는 게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해자 담당의 남궁인

 

대다수의 국민들이 심신미약 감형에 대해 폐지 여론인 가운데, 법조계는 그것이 형법의 대원칙인 책임 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영화 조커를 본 분들이라면 정신질환자가 벌인 사건에 국가가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계실겁니다. 심신미약 감형 폐지여부를 떠나 법조계, 크게는 국가가 정신질환자들의 치료에 힘을 쏟아야한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끝으로 본 포스팅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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