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원피스’ 복장으로 국회에 출근해 화제를 모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오늘(12일) ‘비동의 강간죄’를 발의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강제적 간음은 유형력(폭행·협박 등 넒은 의미의 물리력) 유무와 상관없이 처벌돼야 하고 폭행과 협박이 수반되면 가중처벌해야 한다.”
‘비동의 강간죄’는 말그대로 ‘강간’의 정의를 상대방의 동의여부에 두는 것입니다. 현행 형법에서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폭행 또는 협박’만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은 이에 따라 폭행, 협박의 정도가 ‘피해자가 항거 불능 상태이거나 항거가 현저히 곤란한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강간죄에 대한 이러한 좁은 의미의 해석으로 일부 가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거나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었죠.
'비동의 간음죄’도입 주장 왜 나왔나?
비동의 간음죄의 핵심은 형법을 개정해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 등 ‘가해자의 유형력 행사’에서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강화하는 것입니다. 강압이 없다 할지라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행위라면 처벌하자는 것이죠.
현행법(형법 297조 등)에 따르면 강간죄란,
폭행, 협박의 정도가 피해자의 반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하게 하는 상황에 해당해야 유죄로 인정됩니다. 이 밖에도 피해자가 심신상실 항거불능의 상태였거나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해 간음한 경우도 강간으로 인정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법부는 성폭력 가해자의 폭행, 협박의 수준을 매우 좁게 해석하는 이른바 '최협의설'을 바탕으로 범죄 성립 여부를 따지고 있습니다.
최협의설이란,
폭행, 협박의 정도가 반항이 불가능할 때에만 유죄로 인정한다는 뜻으로 적용 범위를 너무 넓게 잡으면 자칫 무고한 사람까지 처벌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습니다.
그러나, 가령 피해자가 공포심이나 수치심 때문에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고 그런 이유로 가해자가 유형력을 '충분히' 행사하지 않은 경우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는 문제가 현행 형법체계의한계로 지적돼왔습니다. 사실상 강간을 해놓고도 강간죄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는 거죠.
지난해 성폭행 피해 사례중 강간죄 처벌은 절반에 불과
실제로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성폭행 피해 사례 중 절반 정도는 현행법상 강간죄로 처벌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2018년 3월 발표한 ‘2017 상담통계 및상담 동향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이곳에서 상담 받은 성인 강간 피해자 124건 중 최협의설에 따른 강간죄 요건을 충족한 경우는 12.1%(15건)에 불과했습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은 국제적 추세
2018년 미투 운동, 2019년 N번방 사건으로 성범죄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UN CEDAW)는 우리 정부에 “형법상 강간을 폭행, 협박이 있는 경우에만 한정하지 말고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중점에 두도록 시정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또, 2014년 8월 발효된 여성에 대한 폭력과 가정폭력 방지 및 근절을 위한 유럽평의회 협약도 가입국의 성폭력법 체계를 피해자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바꾸도록 규정했습니다. 영국, 아이슬란드, 벨기에, 미국, 캐나다, 호주의 입법례 또한 강간죄 처벌에 있어 ‘동의’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 부작용은 없을까?
부부·연인 간에 발생하는 문제나 합의했다가 말을 바꾸는 경우 사법부가 시시비비를 따지기 어렵고, 성관계 시 사전 동의는 물론 행위가 종료될 때까지 상대방의 동의 여부를 지속해서 확인해야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이런 이유로 현행법하에서 생기는 부작용 못지않게 비동의 간음죄 도입으로인한 부작용도 많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인터넷 상에서는 여성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성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라는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판례 흐름 긍정적,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하면 강간죄 성립 가능
법 개정은 차치하더라도 최근 판례의 흐름은 두 가지의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성적자기결정의 자유를 중시하여 여성을 성적 결정에 대한 책임역시 부담하여야 하는 주체로 인정하는 방향과, 강간죄의 처벌에 있어서는 폭행과 협박의 정도를 완화하고, 준강간에 있어서 항거불능의 상황에 종교적, 정신적 불능을 포함하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해석을 함으로써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더 보호하는 방향입니다.
기존 법 체계를 강화하든, 비동의 강간죄가 입법 추진되든 부작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지속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현행 법 체계에서는 강간죄 처벌에 있어 여러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으므로 사건 관계인이라면 기존의 판례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법적 자문을 통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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