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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을 못 내면 노역장에 유치?

오른이 말하는 진실

by LEGALMIND-LAW 2020. 3. 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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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못 내면 노역장…가난한 이에겐 '징역형'과 다를 바 없다

오른을 찾아주시는 의뢰인 중, 벌금형 대신 더 센 처벌인 집행유예를 요구하는 피고인들의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벌금형은 말 그대로 재산형에 속하고, 집행유예는 징역형에 속하는 더 큰 형벌인데도 말이죠. 취업제한, 자격정지, 해외 비자 발급 문제, 기업 내 징계 등 집행유예 처분을 받으면 그동안 풀지못하는 문제가 수도 없이 많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고려할 가치가 별로 없는 것들입니다. 이분들에게는 당장 내야 하는 몇백만원 이상의 벌금이 훨씬 더 무겁고, 해결하기힘든 형벌인 것이죠. 게다가 벌금형 처분을 받고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노역장에 유치돼 보통 일당 10만원으로 환산한 노동을 해야 합니다. 

 

폭행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은 문씨는 다음 달 1심 선고를 앞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통장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문씨는 지난 7월 일을 마치고 동료와 함께 노래방에 갔다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서비스를 더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인과 시비가 붙었고, 결국 주인의 멱살잡이를 하고 노래방 마이크를 내던져 망가트리는 등 폭행과 재물을 손괴했다. 

 

결국 기소된 문씨는 변호사를 찾았는데 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됐다. 변호사는 “전과도 없고, 상대가 그리 큰 피해를 본 것도 아니니 벌금형 정도를 받고 끝날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문씨는 “앞으로 정말 착하게 살 테니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벌금형보다 집행유예가 더 센 처벌임에도 불구하고, 당장 피해자와 합의하느라 모아놓은 돈을 써 버린 문씨는 더는 벌금으로 돈을 낼 형편이 안 됐기 때문이다.

 

문씨의 변호사는 공판 때마다 판사에게 “피고인의 어려운 경제적 사정을 감안하여 선처해 달라”고 말했는데, 문씨는 혹여나 판사가 정말 ‘선처’해서 징역형인 집행유예가 아닌 벌금형을 내릴까 봐 조마조마하다.  

 

벌금형 받고도 "집행유예 받도록 항소해달라"  

이 때문에 실제로 의뢰인이 ‘피고인의 이익’과는 반대되는 집행유예를 위해 항소해달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형사소송에서는 1심에서 받은 처벌보다 더 센 처벌을 요구하며 항소할 수는 없기에 사건을 맡은 변호인으로서 난감해지는 것이죠.

 

300만원 못 내 노역장 유치 한 해 3만명 

300만원 미만의 벌금이 없어 노역장에 유치되는 사람들은 매년 꾸준히 2만5000명~3만명 사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올해 7월까지만도 1만2000명이 벌금 300만원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됐습니다. 벌금형을 받은 미성년자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에게 벌금을 빌려주는 한 업자는 “‘황제노역’이라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대다수의 사람에게 노역은 생업과 시간을 맞바꾸는 것”이라며 “혼자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나 수급자들의 경우 그동안 경제 활동을 못 해 더 삶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습니다.  

 

범죄 저질렀으면 처벌받아야 마땅하나

물론 벌금형이든 집행유예든 범죄를 저질렀으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게 맞습니다. 경제적 형편이 어렵다고 죄의 무게가 덜해진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벌금을 받는 사건 중에는 단순히 행정 절차를 따르지 않았거나, 정말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100만원 이하의 소액을 빌리고 안 갚아서 몇백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비군인 이 모씨는 이사한 뒤 14일 안에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난 7월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는데, 병역의무자의 경우 거주지 이동 시 14일 이내에 전입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아서 병력동원 소집 통지서를 전달하지 못하게끔 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씨는 “생계를 유지해야 하느라 전입신고 문제를 잊고 있었다”고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죠.

 

단순한 행정절차를 따르지 않은데서 온 결과이지만, 학업에 충실하며 부모님에게 받는 한달용돈 30만원과 시간을 쪼개 병행하던 알바로 60만원을 받으며 지내던 이 모씨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벌금형의 집행유예와 재산비례형 벌금제도 등장

정부에서도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해 지난 2018년 1월부터 ‘벌금형의 집행유예’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인데, 징역형에 대해 집행유예를 해 주는 것처럼, 500만원 미만의 벌금형에 대해서도 집행을 유예해주는 제도죠. 지난 한 해 동안 벌금형의 집행유예를 받은 건수는 900건 정도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소득에 따라 같은 범죄라도 벌금을 차등해서 매기는 ‘재산비례형 벌금제’ 도입도 준비 중이지만, 아직 사회적으로 찬반 논란이 거세고 진행이 지지부진합니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도 재산비례벌금제를 갖고 있습니다. 재산비례벌금제는 세금 등을 뺀 순수입을 한 달 30일로 나눈 일수(日收)를 하루 벌금 액수로 정하기 때문에 일수벌금제(day-fine)라고도 불리웁니다. 가령 순수입이 한 달 6000유로인 사람은 하루 200유로, 순수입이 한 달 600유로인 사람은 하루 20유로가 일수벌금으로 책적되는 것이죠. 법원은 범죄만 보고 며칠 치 벌금이라고 선고합니다. 그러나 같은 5일 치라도 검찰이 받아내는 벌금은 각각 1000유로와 100유로로 차이가 나게됩니다.

 

수입에 관계없이 정해지는 벌금은 같은 액수라도 빈부의 차이에 따라 느껴지는 징벌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게다가 형법이 함부로 바꾸지 못하는 기본법인 까닭에 벌금 액수는 시대의 돈 가치를 따라잡지 못해 일부 가난한 사람을 빼고는 부담이 크지 않아 액수 자체로는 형벌의 의미를 상실한 경우가 많죠. 쉽게 말해 재산이 100억이 넘는 자와 빚만 잔뜩 있어 하루하루 콘프레이크로 연명하는 이에게 300만원이라는 벌금은 의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부 피고인의 경우 벌금을 납부 못 하면 사실상 징역형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의 노역 신세를 져야 하기에 형벌의 부조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앞으로의 재산비례형 벌금제도 도입은 시간문제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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