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들이 보기에도 생경한 단어들이 갑자기 눈에 띕니다. 바로 피해호소인이라는 용어입니다.
靑,민주당,서울시 모두 현재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A씨를 피해호소인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공식 석상에서 성추행이라는 단어 또한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요. 이는 박 시장의 사망으로 사실관계를 알 수 없게 된 본 사건에 대해 A씨를 피해자로 지칭할 수 없다는 여권의 인식이 깔려있음을 다분히 알 수 있습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이틀 전인 지난 13일 MBC라디오에서 "피해를 호소하는 분의 피해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박 시장이 가해자라고 하는 점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기정사실화를 못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는 피해자의 주장은 호소에 그쳤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지 고민해볼 대목입니다.
청와대, 민주당, 정의당, 서울시 등 한날 한시에 갑작스럽게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모습을 보니 어느정도 물밑작업이 이루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영미권에서는 재판을 통해 피해자라는 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경우 ‘얼리지드 빅팀’(alleged victim·피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이라는 용어를 흔히 쓰지만, 국내에서는 사실 사용하지 않지요. 형사소송법 등에서 피해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수사초기 단계에도 피해자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해왔습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비서에 대한 강제추행으로 사퇴한 불과 두달전인 지난 4월 또한 이인영 전 원내대표와 박주민 최고위원, 남인순 최고위원 등이 모두 '피해자'라는 말을 썼었죠.
청와대는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피해 호소인을 비난하는 2차 가해를 중단해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고,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전날(14일) 성명에서 "피해 호소인에 대한 신상털기와 비방, 모욕과 위협이 있었던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표현했습니다. 서울시도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썼으며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전날 류호정,장혜영 의원의 박 시장 조문 거부 논란에 사과하면서도 '피해 호소인'을 사용했습니다. 여성운동가 출신인 남인순 의원도 이날 "피해 호소인이 겪을 고통에 대해 위로와 사과를 드린다"고 했는데, 남 의원은 이른바 '박원순계'로 통하는 인물입니다.
그간 미투를 시작으로 '피해자 중심주의(피해자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피해 호소 주장이 있다면 객관적 증거가 없더라도 피해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봐 왔습니다)'를 외치던, 즉 증언만으로도 피해자임을 강조해온 현 정부와 여성계가 이러한 단어를 꺼낸 것에 대해 '용어 프레임'이 아니냐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 일 수도 있는 것이죠.
피해자의 입장을 일방적 주장으로 단정짓고 싶은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에 이낙연, 이해찬 의원 등은 황급히 '피해 고소인'이라는 말로 바꿔 입장을 밝히는 중입니다.
피해자라는 단어는 끝까지 사용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고인이 사망하면서 해당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지만 서울시 내부에서 위력에 의한 성추행 고발이 무시된 경위에 대한 조사는 이어져야 한다는데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서울시는 피해 사실을 고발한 공무원의 요청에도 왜 진상조사단을 꾸리지 않았는지 해명하는 것은 물론 관련 규정이 사문화된 것은 아닌지 조사에 착수하길 바랍니다. 정치권은 고소인이 일상을 회복하기까지의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기를 바란다'는 여권, 수사가 재개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길 바랍니다.
법무법인 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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