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에는 피해자와의 합의로 처벌되지 않는 죄목이 몇몇 있습니다. 사건 피해자나 혹은 기타 법률이 정한 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가 제기되는 1) 친고죄,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해 처벌은 면할 수 있는 2) 반의사불벌죄를 말합니다.
형법상 친고죄 범죄
사자명예훼손죄(형법 제308조), 모욕죄(형법 제311조), 비밀침해죄(형법 제316조), 업무상비밀누설죄(형법 제317조), 친족 간 권리행사방해죄(형법 제328조) 등
이 죄목들의 경우, 피해자가 고소를 하지 않으면 검사도 기소할 수 없고 자연스럽게 형사재판도 열리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형사절차가 시작된 터라도 피해자가 '고소 취하서'를 제출했다면, 검찰 단계에선 '불기소처분'이, 재판 단계에선 '공소기각판결'이 내려집니다.
형법상 반의사불벌죄의 범죄
과실치상의 죄(형법 제 226조), 형법상 국교에 관한 죄 중 제 107조˙108조˙109조, 단순·존속폭행죄(제260조 제3항), 단순·존속협박죄(제283조 제3항), 명예훼손죄 및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죄(제312조 제2항) 등
해당 형사사건이 인지되었다면, 피해자의 직접 고소가 없어도 수사에 이어 재판까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사건이 '자동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때 피해자가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의사를 냈거나, 처벌의 의사를 철회했다면 사건에 대한 공소를 제기할 수 없고, 공소기각의 판결이 선고됩니다.
만일 단순 폭행만 저지른 상황이라면 이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기에, 피해자와 합의 후 피해자의 고소취하서나 처벌불원서의 제출로서 처벌은 막을 수 있습니다. 합의서 작성 시 수사기관 또는 법원에 취하서나 처벌불원서를 제출한다는 조항을 넣어 처벌을 피해달라는 의견을 내는 것이지요.
하지만 모든 형사사건이 합의로써 피고소인을 처벌로부터 면해주지는 않습니다.
친고죄나 반의사불벌죄가 해당하지 않는 범죄, 특히 2013년 법 개정에 따라 친고죄 규정이 모두 사라진 성범죄 죄목들은 피해자의 고소 취소나 처벌불원 의사에도 공소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합의가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지 않느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피해자의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배상한다는 측면에서 합의는 매우 중요하고, 합의 여부 또한 재판 시 정상참작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성범죄에 있어 정상참작 기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강제추행”을 들어 양형의 과정을 살펴봅니다. 여기서 말하는 ‘양형’이란,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말하는 형사재판 양형기준을 뜻합니다.
“법관은 양형을 할 때에 위와 같은 양형기준을 존중하여야 하고, 법원은 약식절차 또는 즉결심판절차에 의하여 심판하는 경우가 아닌 한, 양형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함에 따라 판결서에 양형의 이유를 기재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위와 같은 양형기준의 의의, 효력 등을 감안하여 당해 양형을 하게 된 사유를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 이유를 기재하여야 한다.”
(대법원 2010. 12. 9. 선고 2010도 7410,2010전도 44)
현재 양형위원회는 살인, 뇌물, 절도, 사기, 교통 등 사회적으로 위중한 20여 개의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을 설정해두었고, 이 중 “성범죄 양형기준”에서 일반강제추행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해당 양형기준에 따르면 강제추행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는데, 상당한 금액의 공탁(합의), 진지한 반성, 전과가 없는 3가지 경우에 형에 대한 감경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중 전과 기록이나 진지한 반성은 수사자료 조회 및 반성문의 제출로 어느 정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또, 만일 피해자와 직접적인 합의가 있었다면 적절한 금액의 피해 보상금액(합의금)을 지급함으로써 처벌불원의사도 제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론 성범죄 피해자가 가해자와의 면담을 거부해 합의가 잘되지 않을 때가 많고, 때문에 ‘형사 공탁’제도로써 간접적인 합의를 시도하게 되는데요. 문제는 공탁을 할 땐 피해자의 인적 사항이 꼭 필요하기에, 사람에 따라 개인 정보를 알아내려고 한다는 등의 또 다른 문제 제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해자가 직접 합의나 공탁을 시도한다면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형사전문변호사를 통해 상호 간의 입장을 조율하는 것이 원만한 합의에 도움 될 것입니다.
실형 선고의 가능성은
양형기준 감경요소가 충분하다면, 가해자는 법정형에 있어 감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3년 이하의 징역이 선고될 시 집행유예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집행유예 또한 재판부의 재량일 뿐, 구속력을 가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초범이고 피해자와의 합의가 있었는데도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는 최근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 및 사회적으로도 ‘성범죄는 악질 범죄다’라고 보는 시선 때문이라고 하겠는데요.
결과적으로, 합의로써 감경되는 것은 확실하되, 실형을 면하는 것까진 속단할 수 없습니다. 죄의 정도가 나쁜 경우, 혹은 합의에 있어 실질적인 이행이 없는 경우, 합의를 했다면서 이후 태도가 바뀌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합의가 피의자에게 유리한 요소인 것만은 사실이기에, 반드시 합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이에 따르는 진지한 반성이 중요합니다.
성범죄 합의에 대한 시선
보통 엄중한 성범죄 사건에 있어 ‘가해자가 충분히 반성했으며, 피해자도 처벌을 원하지 않아 집행유예를 둔다’라는 등의 뉴스를 접하면, 합의를 통해 “돈 주고 양형을 샀다”라는 비판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하는 것이 민사소송의 원칙이고, 실제 금전의 배상을 통해 어느 정도 피해 회복에 도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합의는 꼭 빠질 수 없는 요소입니다. 대검찰청의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자의 절반은 2,30대 여성인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병원 치료, 이사 비용 등 범죄만 아니었으면 치르지 않았어도 되었을 고액의 비용에 상당한 압박감을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혐의를 인정하는 경우 합의에 관한 한 진지한 피해 회복을 위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좋으며, 만일 과도한 금액의 요구가 있다고 생각되면 변호사의 조력을 빌려 적절한 합의를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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