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 성립에 대한 최근 법원의 입장
지난달 29일, 딸에게 위협을 가하는 남자에게 죽도를 휘두른 아버지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해당 사건의 피고인은 2년 전 자신의 딸을 향해 욕설을 하던 남성 이 모 씨를 상대로 죽도를 휘둘렀고, 이 사고를 계기로 이 모 씨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지난 2018년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배심원단은 이런 김 씨의 행동이 형법상 '면책성 과잉방위'에 해당한다며 '정당방위'를 인정했습니다. 이에 항소심의 재판부도 이를 존중한 판결을 내리며 원심의 판단을 인정한 것입니다.
위 사건은 지난 2014년 정당방위에 대한 큰 논란을 일으켰던 '도둑 뇌사 사건'과 무척 대조되는 사안입니다. 당시 이 사건은 '정당방위 성립요건'과 관련한 큰 논란이 있었습니다. 자택에 불법 침입한 도둑에게 폭력을 행사해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해 정당방위가 아닌 상해치사죄가 선고된 케이스인데, 이 판결은 당시의 대중들에게 큰 사법 불신을 안겨다 주기도 했습니다.
정당방위 인정되려면
제21조(정당방위)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형벌 감면적 과잉 방위)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면책적 과잉 방위) 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형법과 법원 판례상,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성립요건은 3가지가 필수입니다. '현재의 부당한 침해', '본인 혹은 타인을 방위하기 위한 행위' 그리고 '상당한 이유'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 3가지를 충족하였더라면, 이후 2항의 '과잉방위'와 3항의 '면책적 과잉방위'를 판단합니다.
쟁점은 1항 '상당한 이유'에서 특히 많이 발생합니다. '상당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추상적이고 주관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법원은 '상당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사건 당시의 구체적인 사정들을 고려해 정당방위를 해석합니다. 쉽게 말해, 피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꼭 그러한 행위가 필요했는지, 혹은 정도는 사회적으로도 용인될 만한 적정 수준이었는지 등을 판단한다고 보면 됩니다.
만일 그 행위에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면 이제 '과잉방위'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닌지 파악합니다. 여기서 과잉 행위는 아래에서 말하는 '소극적 방어행위'를 넘어선 행위들입니다.
소극적 방어행위 해당하려면
-먼저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보다 과한 폭력은 안된다
-상대방 피해가 본인의 피해보다 적어야 한다
위 기준이 넘으면 '적극적 공격 행위'가 인정되고, 통상을 넘은 '과잉 행위'라고 판단될 수 있습니다. 이후 그것이 용인될만한 '정황(2항)'이나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3항)'는 없었는지도 파악되겠죠. 그러나 이 수준에 이르는 행위는 당시 상황을 매우 엄격히 따져 형을 따지기에 실제 적용이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법원의 시각을 빌려 '도둑 뇌사 사건'을 다시 해석해봅니다. 일단 자택에 침입한 도둑에게 첫 폭행을 가한 일은 어느 정도 정당한 방위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 도둑이 이미 쓰러져있는데도 수 분간 빨래건조대로 폭행한 행위는, 그 행위 자체에도 '상당한 이유'가 없을뿐더러 그 정도를 초과한 '과잉 행위'라고 해석됐습니다. 애초 도둑이 흉기를 소지하지 않고 폭행 이후 즉시 도망가려고 했다는 점에서 '법익에 대한 부당한 침해'도 없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맨 처음의 '죽도 사건'이 정당방위로 인정된 것은, 이 일이 "저녁 늦게 발생했다는 점"과 "무기가 '죽도'라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재판부는, "완충기능이 구비된 죽도를 썼던 점과 피해자가 별다른 상해를 입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피고인의 행위가 사회 통념상 그 '상당성'의 범위를 초과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야간에 딸이 위협받는 행위를 비추어 보건대 형법 제21조 제3항의 요건이 말하는 정당방위가 인정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행위는 자신의 딸의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서 사회적으로 상당한 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어 정당방위에 해당하고, 설령 피고인이 죽도로 갑, 을을 가격하는 행위를 한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정당방위의 범위를 넘어 과잉방위에 해당하더라도, 야간에 자신의 딸이 건장한 성인 남성을 포함한 사람들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는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당황 또는 흥분 등으로 말미암아 저질러진 것으로 형법 제21조 제3항의 ‘벌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해당하며...
[서울남부지방법원 2019. 9. 23. 선고 2019고합 127 판결]
나가며
두 사건 모두 어느 정도 과잉방위가 있었던 사안이지만, 구체적 정황에 의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렇듯 정당방위는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보게 되고, 그렇다 보니 사법부의 판결에 있어 국민적 법 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때도 많은 편입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과잉방위의 상황을 제쳐두고, 주먹질과 같은 일상적 ‘싸움’에선 정당방위가 어떻게 인정되고 있을까요?
판례 상 대부분의 싸움은 '공격과 방어를 서로 주고받는 상황'이라 간주되기 때문에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습니다. 다만 실제 일방적이고 집단적인 폭행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 예를 들어 그런 상황을 벗어나려다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상해가 가해진 사례 등에선 정당방위가 인정되고 있습니다.
유의미한 판결이 나왔지만 여전히 형법상의 정당방위 성립요건은 매우 좁고 까다롭습니다. 따라서 내가 취한 행위가 이에 해당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선 전문가의 법률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싸움이나 기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겠으나 나도 모르게 폭행 사건에 연루되었다면, 관련 경험이 풍부한 형사전문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사건을 현명하게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법인 오른이었습니다.